제9장. 양자 하드웨어의 조건
지금까지 우리는 큐빗, 게이트, 알고리즘, 오류 정정 코드를 마치 종이 위에서 완벽하게 작동하는 것처럼 다루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이론을 현실로 구현하는 것은 인류의 가장 큰 공학적 도전 과제 중 하나입니다.
양자 하드웨어를 구축하는 것은 근본적인 딜레마와의 싸움입니다. 양자 컴퓨터는 결맞음(Coherence)을 유지하기 위해 주변 환경으로부터 완벽하게 고립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알고리즘을 수행하기 위해 우리는 큐빗을 정밀하게 제어(Control)하고 측정해야만 합니다. 이는 본질적으로 시스템에 ’개입’하는 행위입니다.
이 장에서는 이 딜레마를 극복하고 유용한 양자 컴퓨터를 만들기 위해 물리적 시스템이 갖추어야 할 핵심 조건들, 즉 디빈첸조의 기준(DiVincenzo’s Criteria)과 결맞음의 핵심 척도인 T1, T2 시간에 대해 배웁니다.
1. 기본 개념 (Fundamental Concepts)
디빈첸조의 5가지 기준 (DiVincenzo’s 5 Criteria): 2000년 데이비드 디빈첸조(David DiVincenzo)가 제시한, 유용한 양자 컴퓨터가 되기 위한 5가지 필수 요건입니다. 이는 모든 양자 하드웨어 플랫폼을 평가하는 표준 척도가 되었습니다.
- 확장 가능한 물리적 큐빗 (Scalability): 시스템이 수백만 개의 잘 정의된 큐빗을 가질 수 있도록 확장 가능해야 합니다.
- 초기화 (Initialization): 모든 큐빗을 \(|00\dots0\rangle\)과 같은 신뢰할 수 있는 초기 상태로 재설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알고리즘의 시작점)
- 긴 결맞음 시간 (Long Coherence Times): 큐빗의 양자 상태가 게이트 작동 시간(\(\tau_{gate}\))보다 훨씬 더 오래 유지되어야 합니다. (\(T_{coherence} \gg \tau_{gate}\))
- 유니버설 게이트 세트 (Universal Control): 1장에서 배운 유니버설 게이트(예: 단일 큐빗 회전 + CNOT)를 큐빗에 정밀하게 적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 측정 (Measurement): 개별 큐빗의 최종 상태를 높은 정확도로 측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T1 시간 (에너지 완화 시간): 큐빗의 에너지 손실 속도를 나타내는 척도입니다. (Longitudinal Relaxation)
- 정의: 큐빗이 들뜬 상태(\(|1\rangle\))에 있을 때, 자발적으로 에너지를 잃고 바닥 상태(\(|0\rangle\))로 붕괴(decay)하는 데 걸리는 평균 시간입니다.
- 오류 모델: 6장의 진폭 감쇠(Amplitude Damping) 채널과 직접적으로 연결됩니다.
- 의미: T1은 큐빗이 \(|1\rangle\) 상태의 정보를 얼마나 오래 기억할 수 있는지, 즉 계산의 ’최대 상한 시간’을 결정합니다.
T2 시간 (위상 결맞음 시간): 큐빗의 위상 정보 손실 속도를 나타내는 척도입니다. (Transverse Relaxation)
- 정의: 큐빗이 \(|+\rangle = \frac{|0\rangle+|1\rangle}{\sqrt{2}}\) 같은 중첩 상태에 있을 때, \(|0\rangle\)과 \(|1\rangle\) 사이의 정교한 상대 위상 관계가 무작위화되어 붕괴되는 데 걸리는 평균 시간입니다.
- 오류 모델: 6장의 위상 플립(Phase-Flip) 채널과 직접적으로 연결됩니다.
- 의미: T2는 큐빗의 ’양자성(superposition)’이 얼마나 오래 유지되는지를 나타냅니다. T2가 0이 되면 큐빗은 고전 비트처럼 행동합니다.
T1과 T2의 관계: T2는 T1보다 항상 짧습니다. (에너지 손실(\(T_1\))은 위상 손실(\(T_2\))을 자동으로 유발하지만, 위상 손실(\(T_2\))은 에너지 손실(\(T_1\)) 없이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T_2 \le 2T_1\] 일반적으로 \(T_2\)가 \(T_1\)보다 훨씬 짧으며, 양자 알고리즘의 성능을 실질적으로 제한하는 것은 \(T_2\)입니다.
양자 볼륨 (Quantum Volume, QV): 큐빗의 개수만으로는 컴퓨터의 성능을 말할 수 없습니다. 큐빗의 품질(오류율)도 중요합니다. 양자 볼륨은 “얼마나 많은 큐빗으로, 얼마나 깊은(복잡한) 회로를 성공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가?”를 나타내는 현대적인 통합 벤치마크입니다. QV가 \(2^L\)이면, \(L\)개의 큐빗으로 \(L\) 깊이의 복잡한 회로를 신뢰할 수 있게 실행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2. 기호 및 핵심 관계식
T1 (에너지 완화): \(|1\rangle\) 상태에 있을 확률 \(P_1(t)\)는 지수적으로 감쇠합니다. \[P_1(t) = P_1(0) e^{-t/T_1}\]
T2 (위상 결맞음): 중첩 상태의 밀도 행렬 비대각 성분(coherence) \(\rho_{01}\)은 지수적으로 감쇠합니다. \[\rho_{01}(t) = \rho_{01}(0) e^{-t/T_2}\]
T2* (T2-star) 시간: 측정된 T2 시간은 두 가지 원인으로 발생합니다.
- 비가역적(Irreversible): 환경과의 얽힘으로 인한 ‘진짜’ 결어긋남.
- 가역적(Reversible): 큐빗마다 다른 정적(static) 자기장 노이즈로 인한 느린 위상 변화. (예: 스핀 에코 기술로 되돌릴 수 있음)
- \(\frac{1}{T_2} = \frac{1}{T_{2, \text{irreversible}}} + \frac{1}{T_{2, \text{static}}}\) (T2*는 \(T_2\)보다 짧습니다)
게이트 충실도 (Gate Fidelity) \(F\): 게이트가 의도한 유니터리 연산 \(U\)를 얼마나 정확하게 수행했는지(\(\rho \to \mathcal{E}(\rho)\)) 나타내는 척도. \[F = \langle\psi_{ideal}| \mathcal{E}(|\psi_{ideal}\rangle\langle\psi_{ideal}|) |\psi_{ideal}\rangle\]
- 오류율 (\(\epsilon\)): \(\epsilon = 1 - F\)
성능 조건 (Criterion 3): 알고리즘에 \(N_{gates}\)개의 게이트가 필요하다면, \[T_2 \gg N_{gates} \times \tau_{gate}\] 또는, 게이트 오류율 \(\epsilon\)에 대해 \(N_{gates} \times \epsilon \ll 1\) 이어야 합니다.
3. 손쉬운 예제 (Examples with Deeper Insight)
예제 1: T1 - 에너지 감쇠 (Amplitude Damping)
- 상황: 큐빗을 \(|1\rangle\) 상태로 준비했습니다. 이 큐빗은 6장에서 배운 ’진폭 감쇠 채널’을 겪습니다. (예: 들뜬 원자가 광자를 방출하고 바닥 상태로 떨어짐)
- 물리적 의미: \(|1\rangle \to |0\rangle\)로의 붕괴는 비가역적인 에너지 손실입니다. 만약 \(T_1 = 50 \mu\text{s}\) (마이크로초)라면, \(50 \mu\text{s}\)가 지났을 때 큐빗이 \(|1\rangle\) 상태에 남아있을 확률은 \(e^{-1} \approx 37\%\)에 불과합니다. \(100 \mu\text{s}\)가 지나면 \(\approx 13.5\%\)입니다.
- 💡 상세 설명: > T1 오류는 Z-기저(\(|0\rangle, |1\rangle\))에서 비트 플립(\(X\)) 오류를 유발합니다. \(T_1\)은 큐빗에 저장된 고전적 정보(0 또는 1)가 얼마나 오래 유지되는지에 대한 한계입니다.
예제 2: T2 - 위상 감쇠 (Dephasing)
상황: 큐빗을 \(|+\rangle = \frac{1}{\sqrt{2}}(|0\rangle + |1\rangle)\) 상태로 준비했습니다.
물리적 의미: \(|+\rangle\) 상태는 \(|0\rangle\)과 \(|1\rangle\)의 에너지 차이 \(\Delta E\)에 해당하는 주파수(\(\omega = \Delta E / \hbar\))로 진동합니다. \(\psi(t) = \frac{1}{\sqrt{2}}(|0\rangle + e^{-i\omega t}|1\rangle)\).
하지만 환경의 잡음(예: 주변의 다른 스핀이 만드는 미세한 자기장)이 이 \(\Delta E\)를 미세하게 흔듭니다. (\(\omega \to \omega + \delta\omega(t)\))
시간이 지나면, 이 무작위적인 위상 변화 \(\delta\omega(t)\)가 누적되어 \(|0\rangle\)과 \(|1\rangle\) 사이의 초기 위상 관계를 완전히 잊어버리게 됩니다.
💡 상세 설명 (T1 vs T2 - 팽이 비유)
큐빗의 상태(블로흐 벡터)를 회전하는 팽이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 팽이의 방향: Z축(\(|0\rangle\))을 향해 똑바로 서 있는 팽이는 \(|0\rangle\) 상태입니다. XY 평면(\(|+\rangle\))을 향해 옆으로 누워 회전하는 팽이는 \(|+\rangle\) 상태입니다.
- T1 (에너지 손실): 팽이가 마찰로 속도를 잃고 쓰러지는 과정입니다. (예: \(|+\rangle \to |0\rangle\) 또는 \(|1\rangle \to |0\rangle\))
- T2 (위상 손실): 팽이가 쓰러지지는 않았지만(\(T_1\) 손실 없음), 팽이가 도는 축(Z축)이 미세하게 흔들려서 팽이의 회전 속도(위상)가 불규칙해지는 과정입니다.
핵심: 팽이가 쓰러지는 데는 꽤 오랜 시간(\(T_1\))이 걸릴 수 있지만, 팽이의 회전 위상을 예측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훨씬 더 쉽고 빠르게(\(T_2\)) 일어납니다. 이것이 \(T_2 \ll T_1\)인 이유이며, 양자 알고리즘(중첩을 이용하는)이 T2에 훨씬 더 민감한 이유입니다.
예제 3: 게이트 수 계산 (Criterion 3)
상황: 현재 최고 수준의 초전도 큐빗이 \(T_2 = 150 \mu\text{s}\) (0.00015초)의 결맞음 시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CNOT 게이트 1회를 수행하는 데 \(\tau_{gate} = 50 \text{ ns}\) (0.00000005초)가 걸립니다.
문제: 결맞음이 사라지기 전에 이 큐빗으로 몇 개의 CNOT 연산을 수행할 수 있습니까?
계산: 최대 게이트 수 \(\approx T_2 / \tau_{gate} = (150 \times 10^{-6} \text{ s}) / (50 \times 10^{-9} \text{ s})\) \(= 3 \times 10^3 = 3,000\) 개
💡 상세 설명 (오류 정정의 필요성) > 3,000개는 많아 보이지만, \(N=2048\) 비트를 소인수분해하는 쇼어 알고리즘은 약 \(10^9\) (10억) 개의 게이트가 필요합니다. > 3,000개만 돌려도 정보가 사라지는 하드웨어로 10억 개의 게이트를 돌리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것이 바로 7장, 8장에서 배운 양자 오류 정정 코드(QECC)가 단순한 이론이 아니라, 유용한(fault-tolerant) 양자 컴퓨터를 만들기 위한 필수 조건임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한 번의 계산이 끝나기 전에 수천 번의 오류 ‘수정’ 사이클을 돌려야 합니다.
4. 연습문제
- 디빈첸조 기준: 알고리즘 수행에 필수적인 디빈첸조의 5가지 기준을 나열하십시오.
- T1과 T2: 큐빗이 \(|1\rangle\) 상태에 있을 때 \(T_1\) 오류(에너지 완화)가 발생하면 어떤 상태가 됩니까? 큐빗이 \(|+\rangle\) 상태에 있을 때 \(T_2\) 오류(위상 완화)가 발생하면 (이상적으로) 어떤 상태가 됩니까? (힌트: 6장)
- T2의 한계: 어떤 큐빗의 \(T_1\) 시간이 \(100 \mu\text{s}\)로 측정되었습니다. 이 큐빗의 \(T_2\) 시간은 \(300 \mu\text{s}\)가 될 수 있습니까?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 게이트 오류율: 큐빗의 \(T_2 = 200 \mu\text{s}\)이고, 게이트 시간 \(\tau_{gate} = 100 \text{ ns}\)입니다. 이 게이트의 결맞음 한계 오류율(coherence-limited error rate) \(\epsilon \approx \tau_{gate} / T_2\) 를 근사적으로 계산하십시오.
- 초기화: 디빈첸조의 두 번째 기준(초기화)이 왜 중요한지, 2장의 도이치-조사 알고리즘의 첫 단계를 예로 들어 설명하십시오.
5. 해설
- 확장 가능한 큐빗, (2) 초기화, (3) 긴 결맞음 시간, (4) 유니버설 게이트, (5) 측정.
- T1 오류: \(|1\rangle\) 상태가 \(T_1\) 과정을 거치면 \(|0\rangle\) 상태가 됩니다. (에너지 손실) T2 오류: \(|+\rangle = \frac{1}{\sqrt{2}}(|0\rangle+|1\rangle)\) 상태가 \(T_2\) 과정을 거치면, 비대각항이 사라진 혼합 상태 \(\rho = \frac{1}{2}(|0\rangle\langle 0| + |1\rangle\langle 1|) = \frac{\mathbf{1}}{2}\) 가 됩니다. (양자 중첩 붕괴)
- 없습니다. \(T_2 \le 2T_1\) 관계에 따라, \(T_1 = 100 \mu\text{s}\)인 큐빗의 \(T_2\)는 최대 \(200 \mu\text{s}\)입니다. \(T_2\)는 에너지 완화(T1) 외에도 순수 위상 완화 과정을 포함하므로 \(T_1\)보다 (같거나) 짧을 수밖에 없습니다.
- \(\epsilon \approx \tau_{gate} / T_2 = (100 \times 10^{-9} \text{ s}) / (200 \times 10^{-6} \text{ s}) = 0.5 \times 10^{-3} = 0.0005\). 이는 게이트 당 오류율이 약 \(0.05\%\) (또는 충실도 99.95%)가 결맞음 시간만으로 인해 발생한다는 의미입니다. (실제로는 게이트 제어 부정확성 등으로 오류율이 더 높습니다.)
- 도이치-조사 알고리즘(2장)의 첫 단계는 \(H^{\otimes n}\)을 \(|0\rangle^{\otimes n}\) 상태에 적용하여 모든 입력의 균등 중첩(\(\sum |x\rangle\))을 만드는 것입니다. 만약 큐빗이 \(|0\rangle\)이 아닌 무작위 상태(예: \(T_1\) 오류로 \(|1\rangle\)이 섞이거나, 측정이 덜 된 상태)에서 시작한다면, \(H^{\otimes n}\)을 적용한 결과는 균등 중첩이 아니게 되며, 알고리즘의 간섭 패턴이 망가져 잘못된 답을 내놓게 됩니다.